hyunkim.lawyer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 언제나 더 나은 답이 있다.

[일못변 4] 변경내용 추적 반대

2018년 6월 28일 작성


지난번 글에서 메타데이터를 잘못쓰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지, 또 잘못하면 얼마나 엄청난 손해배상을 겪게 되는지 간단히 소개하였다.

처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변경내용 추적”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 나는 사실 가장 열광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이 기능의 사용을 가장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일못변” 범주에 넣어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거래전문 변호사의 90%를 일못변으로 비난하는 셈이라 망설이고 있다. 한국으로만 치면 적어도 90%는 확실히 넘을 것이다. 계약서 협상을 할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변경내용 추적”을 반대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적어 보겠다.

첫째, 돌아갈 방법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항이 있다고 해 보자. 이걸 삭제하면 상대방이 기를 쓰고 반대할 게 빤하다. 그렇지만, 도저히 이걸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럴 때 “변경내용 추적” 기능을 끄고, 삭제한 다음 다시 “변경내용 추적” 기능을 다시 켜면? 먹힌다! 이 말은 심지어 변경내용 추적을 켠 상태에서 상대방이 수정한 내용이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일일이 다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보낸 버전과 과연 일치하는지… 이런 일을 하고 고객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하지 말아야 하는가? 물론,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정도에 달려 있지만, 결국 거래 협상이라는 것은 불신에서 신뢰로 나아가는 과정 아닌가? 어떻게 믿을 것인가?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치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처럼 꾸며서 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의 변경내용 추적과 커멘트는 모두 작성한 사람별로 다른 색이 부여된다. 환경설정에서 사용자명을 상대방의 사용자로 바꾸고 해 보라. 마치 수정이나 커멘트가 상대방이 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대부분의 거래에서는 계약서 초안을 수정하여 돌릴 때 수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수신인을 지정하여 보낸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심지어 이런 일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력을 추적하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셋째,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변경내용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잡아 낸다. 예를 들어, 포맷의 변경 – 예를 들어 문단 스타일 변경 – 이나 폰트의 변경 등과 같은 내용과는 무관한 내용도 모두 내용의 변경으로 반영된다. 이것은 특히 여러나라의 사람들 사이의 거래에서 특히 골치아프다. 예를 들어, 옛날에 한국의 회사와 대만 회사 사이의 거래 관련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각자 한국의 로펌과 대만의 로펌을 선임하였고, 내부적으로는 한국어와 대만어를 사용하였고, 외부로 상대방과 교신할 때에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실제 변경 내용보다 포맷 및 폰트 변경과 관련된 변경내용이 더 많았다! 이걸 피하기 위하여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포맷이나 폰트와 관련된 변경이 적용될 때에는 “변경내용 적용”을 하거나 또는 아예 애초부터 “변경내용 추적” 기능을 끄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의도치 않게 첫번째와 두번째에서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관리비용이 너무 크게 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 심각한 문제가 여러 차례 수정을 하면 언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고쳤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 거래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쟁점이 줄어들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협상을 진행할 수록 쟁점이 오히려 늘어난다면, 그 거래는 거의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딱히 창조적이지 않고 서로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특정 조항을 넣었는데, 상대방이 삭제했다고 해 보자. 나는 그것을 어떤 변경 없이 (또는 사소한 변경을 가하여) 다시 넣고 싶다. 어떻게 할까? 변경내용 취소를 해야 하나?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로 해서 – 즉 협상의 이력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서 – 이것은 적게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크게는 심각한 불신을 초래햐게 된다 아니면 그대로 다시 복사-붙여넣기 해야 하나? 해 보면, 삭제한 부분은 보이기는 하지만 복사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조항 전체를 삭제했을 때에는 이전 버전 문서를 켜 놓고, 거기에서 다시 복사해서 그대로 붙여 넣거나, 아니면 그 문서를 찾기가 용이하지 않거나 귀찮을 때에는 – 심지어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문서의 다른 버전을 여럿 열어 놓고 작업하다보면 원치 않는 실수를 할 가능성도 아주 높다 – “변경내용 취소”한 다음, “복사”하고 “변경내용 취소를 취소” (이런 메뉴는 없다. 그냥 Ctrl-Z 또는 그냥 취소를 눌러 행위를 취소해야 한다)한 다음 “붙여넣기”를 하는 신공을 발휘해야 한다.

이렇게 협상이 진행되었다고 해 보자. 즉, 내가 조항을 집어 넣었는데, 상대방은 이걸 삭제하고, 나는 다시 집어 넣고, 상대방은 다시 삭제했다고 해 보자. 변경내용 이력이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삭제할 경우에는 애초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고, 최종적으로 삭제한 사람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변경내용 이력도 복잡해지고, 문서도 지저분해진다. 그러면, 협상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조율할 수 있는 문제도 아주 심각한 문제이고 서로가 치열하게 다투는 문제인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그 와중에 상대방 변호사나 아니면 상대방 담당자가 휴가라도 가서 선수가 교체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새로 온 사람은 그 이력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므로, 그저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이고, 이것이야말로 “deal breaker”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므로, 거래가 완성되는 길은 더 요원해진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선호도가 다른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는 상대방이 이렇게 수정한 파일을 받으면 변경내용을 모두 적용한 다음 새롭게 clean slate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커멘트만 추가하기도 한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이런 접근법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협상 과정이 3년이 걸렸건 5년이 걸렸건, 초안이 수십 수백번 왔다갔다했건, 전체의 이력이 다 보이도록 해야만 하지 중간에 이런 식으로 변경내용을 적용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나는 전자이다. 그 이유는 깔끔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즉 초안을 받을 때마다 변경내용을 적용함으로써) 협상의 현재 단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약서를 주고받고 하다 보면 언제 누가 무엇을 고쳤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없어진다. 물론, 마우스-오버를 하면 관련 정보를 보여 주지만, 일일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또 어떤 조항을 왜 고쳤는지 알 수도 없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특정 조항의 위치를 옮긴 것일 뿐인데도, 도대체 이걸 왜 지웠을까 고민하다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그냥 자리를 바꾼 것이구나… 얼마나 심각한 시간 낭비인가?

마지막으로, 채널 관리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회사에서 계약 체결을 협상할 때에는 회사 내에도 여러 담당자가 배정된다. 예를 들어, 법무팀의 담당자, 기획팀의 담당자, 영업 담당자, 심지어는 물류 담당자 등등 … 거기다가 여러 계층의 결재권자들까지… 여기에 외부 변호사가 합류하면… 우리편만 해도 어떨 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 질 수 있다. 그러면, 내부적으로 협의할 때에는 커멘트 기능을 이용하던지, 아니면 본문에 커멘트를 추가하여 내부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을 한 차례 끝내고, 그 다음에 상대방에게 내 보낼 때에는 이것들을 정리하여 새롭게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내부 토의 사항은 모두 삭제하여 깨끗한 상태로 상대방에게 내 보내야 한다. 엄청나게 복잡하고 실수하기 쉬운 일이다.

한 마디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의 “변경내용 추적” 기능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업계의 사람들 90%가 사용하는 기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다소 무례하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이 기능은 절대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다음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Disclaimer (경고)

첫째, 여기에서 내가 한 일 또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비슷한 일을 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둘째, 여기에서 내가 어떤 법이나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셋째,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며, 관련 주제에 대한 이야기의 전체가 아니고 오로지 일부분일 뿐입니다. 넷째, 달리 표시하지 않은 한 번역은 본인이 직접 하였습니다. 다른 곳에서 더 나은 번역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여기에서 하는 이야기는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또 이곳의 이야기는 미국 변호사 이야기이고, 미국법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읽은 이야기는 일반적인 정보이지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이 경고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페이지에 나타납니다.

License (사용)

개인적 목적으로 다른 곳에 글을 복사해 가는 것은 허용합니다만,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의 일부만 복사해갈 경우, 글의 전체 맥락에 따라 내가 의도하는 바가 잘못 표현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링크 등을 포함시켜 독자가 직접 의도와 맥락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사할 때에는 반드시 Disclaimer와 License를 포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글쓰기 규칙

제가 한 업무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비밀특권이나 비밀보호의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도 쓰지 않습니다. 자랑하는 것은 체질도 아니거니와, 제가 하는 일은 --- 계약이건 의견서 작성이건 소송이건 --- 고객 한 사람만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객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비록 로펌에서 일하지만, 회사명과 회사 이메일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회사에도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홈페이지/블로깅에 대하여 회사와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 방침은 개인적으로 블로깅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회사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존중합니다. 또, 어차피 제 입맛에 맞추어 다 고칠 수도 없는 바에야... 연락은 hyunkim [at] hyunkim.lawyer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