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변 8] 상담이 끝나고 나서
변호사가 고객보다 더 원하는 것은 바로 더 많은 고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변호사는 최초 상담 1–2시간 정도는 무료로 제공한다. 동방예의지국답게 이런 무료변론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잠재고객: 감사합니다.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변호사: 네, 연락 주세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변호사라면, 그 고객은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변호사는 그냥 잊어버린다. 아주 소수는 나중에 연락 한다. 그리고, 진짜 고객이 된다. 이게 문제다.
변호사와 고객간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이다. 일단 자문/대리 관계가 성립하고 나면, 변호사는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그 고객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며 (비밀유지 의무 및 특권), 고객의 상대방을 대리하지 않아야 하며 (쌍방대리 금지),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유능하게 그를 대리하여야 한다.
상상해 보자. 그렇게 잠재고객이 떠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앞의 잠재고객과 싸우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먼저 상담한 사람이 이혼하고자 하는 아내였고, 두번째로 온 사람은 이혼에 반대하는 남편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변호사는 앞의 아내와의 상담에서 취득한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가? 그보다 전에 변호사는 아내와 대리관계가 없다고 믿고 남편과 계약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아내가 대부분의 잠재고객과 달리 “꼭 연락드리겠다”는 말이 단순히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변호사와 고객 모두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미국 판례이지만, 이런 경우가 있었다.1 이 사건은 이혼소송은 아니고, 의료과실사고이다. 남편이 의료과실로 사망하였고, 아내는 2011년 10월 한 변호사와 상담한다. 그리고, 그렇게 “꼭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상담은 끝났다. 그리고, 2012년 8월 정식으로 자문계약을 체결한다. 그 사이에 소멸시효가 지났다.
누구 책임인가? 변호사는 당연히 고객이 자문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변호사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고객은 최초상담 시점에서 변호사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고객 편을 들었다.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항소심법원이 말한 것은 이런 경우 변호사 관계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고객의 합리적인 믿음”을 포함한 증거를 검토하여 배심원이 판단하여야 하는 문제라고 판결하였다.
변호사 입장에서라면, 심각한 리스크이다. 그냥 그렇게 “꼭 연락드릴게요”와 “아, 네”로 끝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변호사는 정확하게 변호사-고객 관계가 아직은 성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변호사라면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적어도 이메일로라도… 그러자면, 최초상담시 적어도 이름과 이메일 정도는 알아내야 한다.
신중한 변호사라면, 서면 통지를 통해서
- 아직은 변호사-고객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으며,
- 따라서 변호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며,
- 그럼에도 고객의 비밀은 보호할 것이며,
- 언제 변호사-고객 관계는 시작되는지 (예를 들어 자문계약의 체결 또는 자문료 지불)
정도는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신중한 변호사라면
- 고객이 언제까지는 결정해야 하는지 (소멸시효 등을 감안하면)
도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최초 상담에서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각자 판단할 문제이다.
각주
-
Fechner v. Volyn. 상세한 정보는 Mark Fucile, Confirming When Representation Begins Matters 참고. ↩︎